2015년 1월 15일 목요일

밥 모제스에 대한 기억.... 자유는 영원한 투쟁(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

@ 기억에 남는 인터뷰...

밥 모제스

밥 모제스. 벌써 인터뷰를 한지 1년이 넘었다. 
아마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살아있는 전설중 한사람이다.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미시시피 프리덤 섬머'의 기획자이자 책임자였다.
생각보다 많이 늙으셨지만 눈빛은~

1964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밥 모제스가 이끌던 미시시피 비폭력학생위원회는 북부의 백인 대학생들이 미시시피지역에서 흑인과 함께 활동하며 흑인들의 투표등록을 돕도록 하는 "프리덤 섬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남부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지역이었던 미시시피의 인종주의자들은 이들이 공산주의자들이며, 소련의 간첩이고, 문란한 백인 여학생들을 앞세워 무지한 흑인들을 유혹해서 평화로운 미시시피를 정복하려 한다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실제 세사람이 경찰관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평소 리버럴한 성향을 보이던 백인학생들의 부모들도 정작 자식들이 흑인과 함께 운동하기 위해 떠난다고 하자 의절을 선언하거나 학비를 중단하는등 참가를 극력 막았다.
하지만 전국에서 3,000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세사람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사실이 알려진후... 
출발에 앞서 밥 모제스가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상황을 설명한 후 말을 이어갔다.


"..... 누구든지 지금 이 자리에서 돌아가도 됩니다. 
처음에 출발할때 여러분은 죽을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고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간다고 비겁한게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다시 결정해야합니다.

.....하지만....

제발 저와함께 가주십시요. 
그곳은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여러분과 함께 있겠다는 것 뿐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자유는 영원한 투쟁(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이라는 흑인영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합창으로 바뀌었고 다음날 아침 그들은 미시시피로 떠났다.

댓글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