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중국이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습니까?

  1960년대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 보다 당도도 훨씬 높았고 크기도 더 컷다. 더군다나 껍질이 지금 바나나 보다 훨씬 단단했기 때문에 운반이나 보관에도 유리했다. 이 바나나의 이름은 그로미셸이었다.


그로미셸 바나나
  그럼 왜 우리는 그렇게 맛있었다는 그로미셸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로미셸 바나나는 말 그대로 순종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먹어봐서 알지만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씨가 없다. 그러니 서로 다른 나무의 유전자가 섞여서 씨앗을 만드는 과정이 존재할 수 없다. 일종의 꺾꽂이 방식으로 또 다른 바나나 나무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모두 쌍둥이인 것이다. 말 그대로 완벽한 순종인 셈이다. 완벽한 순종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유전적으로 모두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에 치명적이다. 유전적으로 서로 다르면 A라는 전염병에 어떤 개체는 죽더라도 어떤 개체는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유전적으로 동일성이 높기 때문에 모든 개체가 한꺼번에 몰살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전 세계의 모든 바나나 농장에 있던 바나나 나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SF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그로미셸 바나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이다. 물론 캐번디시도 그로미셸과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순종이고 전염병에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10년쯤 뒤에 우리는 캐번디시 보다 당도가 떨어지는 세번째 종의 바나나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역사이야기를 하다가 난데 없이 바나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순종과 잡종, 순혈주의와 다원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순종이라는게 꼭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으로도 존재한다. 흔히 문화적 DNA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는가? 생물학적으로는  DNA가 고정되어 버린 것이 순종이다. 순종이 변화하는 환경에 매우 허약한 것 처럼 문화적으로도 폐쇄적인 순혈주의는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양한 생각이 끼여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쉽게 극단주의로 빠진다. ‘다른 생각’이라는 이름의 제어장치가 없는 자동차인 셈이다. 그래서 급속도로 몰락한 제국들은 순혈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세기초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제국이나 나치의 제3제국은 순혈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한때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스페인도 순혈주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하버드 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를 인터뷰하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 국제 회의에 참석했던 나이 교수는 평소 친분이 있던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중국이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습니까?”



  알다시피 싱가포르라는 나라는 중국계 화교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도시국가이다. 당연히 리콴유 전수상도 중국계 화교이다. 그런데 리콴유의 답변은 조금 의외였다. 그는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중국의 인적자원은 13억이지만 미국의 인적자원은 70억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미국의 실제 인구는 3억 정도 된다. 그러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날카로운 통찰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지금 미국이나 중국으로 성공의 기회를 찾아 이민을 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당신이 이민을 갔을 때 어느 나라에서 당신이 - 외국인이 아니라 - 그 나라의 완전한 시민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겠는가? 당신이나 당신의 자식이 그 나라에서 공직에 진출할 확률이 어느 나라가 더 높겠는가? 아마 따져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시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스티브 잡스와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 헝가리 이민자 출신의 조지 소로스가 공존하는 미국은 그 다원성만으로도 전 세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 중국은 영원히 미국을 앞설 수 없는 걸까? 
  꼭 그렇기야 하겠는가.

  물론 중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처럼 워낙 오랜 기간 한족 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타민족을 받아들이는게 쉬울 리 없다. 더군다나 이미 인구가 너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지 않더라도 미국이 순혈주의화 할 수는 있다. 미국이 제풀에 무너지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이민자의 나라인지라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요즘 티파티들의 기세를 보면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민자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순수성을 부르짓는게 참 어이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16세기 스페인도 원래부터 순수한 스페인인들이 있어서 순수한 스페인의 혈통을 부르짖은 게 아니다. 순수성이란 그냥 발명하면 그만인 존재이므로 미국도 나름의 순수성이란 걸 발명해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린 성큼 다가온 중국 패권시대를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눈으로 그런 세상을 보고 싶지는 않다. (중국 패권시대가 싫다는게 아니라 미국이 폐쇄적인 국가가 되는 순간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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