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5일 목요일

밥 모제스에 대한 기억.... 자유는 영원한 투쟁(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

@ 기억에 남는 인터뷰...

밥 모제스

밥 모제스. 벌써 인터뷰를 한지 1년이 넘었다. 
아마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살아있는 전설중 한사람이다.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미시시피 프리덤 섬머'의 기획자이자 책임자였다.
생각보다 많이 늙으셨지만 눈빛은~

1964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밥 모제스가 이끌던 미시시피 비폭력학생위원회는 북부의 백인 대학생들이 미시시피지역에서 흑인과 함께 활동하며 흑인들의 투표등록을 돕도록 하는 "프리덤 섬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남부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지역이었던 미시시피의 인종주의자들은 이들이 공산주의자들이며, 소련의 간첩이고, 문란한 백인 여학생들을 앞세워 무지한 흑인들을 유혹해서 평화로운 미시시피를 정복하려 한다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실제 세사람이 경찰관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평소 리버럴한 성향을 보이던 백인학생들의 부모들도 정작 자식들이 흑인과 함께 운동하기 위해 떠난다고 하자 의절을 선언하거나 학비를 중단하는등 참가를 극력 막았다.
하지만 전국에서 3,000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세사람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사실이 알려진후... 
출발에 앞서 밥 모제스가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상황을 설명한 후 말을 이어갔다.


"..... 누구든지 지금 이 자리에서 돌아가도 됩니다. 
처음에 출발할때 여러분은 죽을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고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간다고 비겁한게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다시 결정해야합니다.

.....하지만....

제발 저와함께 가주십시요. 
그곳은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여러분과 함께 있겠다는 것 뿐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자유는 영원한 투쟁(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이라는 흑인영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합창으로 바뀌었고 다음날 아침 그들은 미시시피로 떠났다.

2015년 1월 13일 화요일

앤드류 램버트 인터뷰 "21세기의 초강대국은?"

  이 인터뷰는 제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세계적인 군사학자중 한사람인 영국의 앤드류 램버트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중 일부입니다. 다큐멘타리에서도 쓰지 못했고, 책에도 쓰지 못했지만 그냥 사장시키기엔 아까운 내용들이라 이곳에 올립니다.

앤드류 램버트 (영국 킹스 컬리지 교수)


질문 : 초강대국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초강대국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한 개 이상의 대륙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나라죠. 
두 개의 작전지역 사이의 해상 통신(sea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19세기에는 오직 하나의 초강대국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입니다. 
이것은 힘이 아닙니다. 
전 세계를 운영하는 능력입니다. 
영국은 힘이 센 적이 없습니다. 뛰어난 군대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를 점령했던 마지막 영국인은 1422년에 사망했습니다. (헨리 5세를 가리킴)
영국은 이런 군사적 능력을 갖춘 적이 없습니다.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자신의 해상력을 솜씨 있게 발휘했습니다. 

미국은 20세기 초강대국입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엄청난 자원을 가진 대륙 국가입니다. 
인구도 많고 돈도 많습니다. 산업도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사용할 의지도 가득합니다. 
미국은 어디든 가고 그 누구도 못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리아에 폭탄을 터뜨릴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이 원한다면 알아서 할거니까요

우리가 국방에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영국이든 한국이든 말이죠.
자신의 국방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미국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초강대국은 너무 강력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단순히 두 나라는 수준이 다릅니다. 
중국은 강한 플레이어입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은 매우 강력합니다. 
대서양에서 중국의 세력은 어떻습니다. 
북극에서는요?
지중해에서는요?
유럽에서는요?
아니면 북이나 남아메리카에서는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은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계적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우 강력하지만, 중국은 지역적 플레이어입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두 번의 세계대전 동안 일본은 아주 강력했습니다. 
아시에에서 대단한 위세를 떨쳤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은 일본의 옛 모습보다 더 크고 강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족쇄를 부수지 못했습니다. 세계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비에트 연방은 아메리카 대륙까지 손을 뻗칠 수 있었습니다. 
쿠바에 동맹이 있었습니다. 
국제적인 규모의 운영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스로 그럴 수 있었죠.
중국은 아직 거기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훨씬 더 위험한 미국의 경쟁자였습니다. 
중국은 아직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중국은 지역에서 아주 강력합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오해가 전쟁을 일으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면 중국의 민주적 개혁보다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대륙 국가는 국내 사정에 민감합니다. 
중국의 문제는 미국이 아닙니다. 바로 중국 사람들이죠. 
스스로를 기득권층(power establishment/지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한족이 아니거나, 공산당 당원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중국에 뜻밖의 커다란 경제적 이익이 생긴다면 
중국은 이를 외국이 아닌 본토에 사용할 겁니다.  

저는 여전히 미국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는데 많은 돈을 쓰려고 준비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에게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다른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데 돈을 쓰고 싶으냐고 물어보세요.  
원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시리아 공격을 원치 않습니다. 그저 고국에 가고자 합니다.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베이징에 갔을 때 중국인들과 이에 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이 가진 문제는 두 나라가 똑같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크고, 아주 강하며, 자신에게 집착하죠. 
내가 얼마나 크고 강한지 좀 보라구! 네, 안다구요.

영국은 그렇지 않죠.
알다시피 영국은 아주 작습니다. 
작은 나라는 영리하거나 아니면 쥐죽은 듯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영국은 계속 불만을 토로합니다. 저는 영국이 꽤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나라는 장점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큰 나라는 그럴 필요가 없죠. 
미국과 중국은 아주 크고 강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전쟁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질문 :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느나라가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할까요?

미국이죠.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입니다. 
아마 앞으로 50년간 중국은 이를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가진 세계를 움직이는 능력이 없습니다.  
미국 같은 전략 무기 시스템도 없습니다. 
중국의 모든 군대는 완전히 구식입니다. 
중국군은 민간 방위 조직으로 국내 폭동을 통제합니다.  
전투에 나가는 군대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바깥에서 전쟁을 치른 나라는 어디입니까?
베트남입니다. 
한 방 먹었죠. 
베트남은 중국을 쫓아냈습니다. 
베트남도 성공적으로 침략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미국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미군은 중국을 완전히 압도할 겁니다. 
남중국해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해군은 큰 손실을 입을 겁니다. 
일본이 대부분을 침몰시킬 테니까요. 
미국이 도착해서는 중국인 선원들을 구조하고 있을 겁니다. 
어떤 전투도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공군은 더 심각합니다.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2015년 1월 6일 화요일

중국이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습니까?

  1960년대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 보다 당도도 훨씬 높았고 크기도 더 컷다. 더군다나 껍질이 지금 바나나 보다 훨씬 단단했기 때문에 운반이나 보관에도 유리했다. 이 바나나의 이름은 그로미셸이었다.


그로미셸 바나나
  그럼 왜 우리는 그렇게 맛있었다는 그로미셸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로미셸 바나나는 말 그대로 순종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먹어봐서 알지만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씨가 없다. 그러니 서로 다른 나무의 유전자가 섞여서 씨앗을 만드는 과정이 존재할 수 없다. 일종의 꺾꽂이 방식으로 또 다른 바나나 나무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모두 쌍둥이인 것이다. 말 그대로 완벽한 순종인 셈이다. 완벽한 순종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유전적으로 모두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에 치명적이다. 유전적으로 서로 다르면 A라는 전염병에 어떤 개체는 죽더라도 어떤 개체는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유전적으로 동일성이 높기 때문에 모든 개체가 한꺼번에 몰살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전 세계의 모든 바나나 농장에 있던 바나나 나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SF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그로미셸 바나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이다. 물론 캐번디시도 그로미셸과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순종이고 전염병에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10년쯤 뒤에 우리는 캐번디시 보다 당도가 떨어지는 세번째 종의 바나나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역사이야기를 하다가 난데 없이 바나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순종과 잡종, 순혈주의와 다원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순종이라는게 꼭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으로도 존재한다. 흔히 문화적 DNA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는가? 생물학적으로는  DNA가 고정되어 버린 것이 순종이다. 순종이 변화하는 환경에 매우 허약한 것 처럼 문화적으로도 폐쇄적인 순혈주의는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양한 생각이 끼여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쉽게 극단주의로 빠진다. ‘다른 생각’이라는 이름의 제어장치가 없는 자동차인 셈이다. 그래서 급속도로 몰락한 제국들은 순혈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세기초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제국이나 나치의 제3제국은 순혈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한때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스페인도 순혈주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하버드 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를 인터뷰하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 국제 회의에 참석했던 나이 교수는 평소 친분이 있던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중국이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습니까?”



  알다시피 싱가포르라는 나라는 중국계 화교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도시국가이다. 당연히 리콴유 전수상도 중국계 화교이다. 그런데 리콴유의 답변은 조금 의외였다. 그는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중국의 인적자원은 13억이지만 미국의 인적자원은 70억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미국의 실제 인구는 3억 정도 된다. 그러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날카로운 통찰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지금 미국이나 중국으로 성공의 기회를 찾아 이민을 간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당신이 이민을 갔을 때 어느 나라에서 당신이 - 외국인이 아니라 - 그 나라의 완전한 시민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겠는가? 당신이나 당신의 자식이 그 나라에서 공직에 진출할 확률이 어느 나라가 더 높겠는가? 아마 따져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시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스티브 잡스와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 헝가리 이민자 출신의 조지 소로스가 공존하는 미국은 그 다원성만으로도 전 세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 중국은 영원히 미국을 앞설 수 없는 걸까? 
  꼭 그렇기야 하겠는가.

  물론 중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처럼 워낙 오랜 기간 한족 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타민족을 받아들이는게 쉬울 리 없다. 더군다나 이미 인구가 너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지 않더라도 미국이 순혈주의화 할 수는 있다. 미국이 제풀에 무너지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이민자의 나라인지라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요즘 티파티들의 기세를 보면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민자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순수성을 부르짓는게 참 어이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16세기 스페인도 원래부터 순수한 스페인인들이 있어서 순수한 스페인의 혈통을 부르짖은 게 아니다. 순수성이란 그냥 발명하면 그만인 존재이므로 미국도 나름의 순수성이란 걸 발명해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린 성큼 다가온 중국 패권시대를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눈으로 그런 세상을 보고 싶지는 않다. (중국 패권시대가 싫다는게 아니라 미국이 폐쇄적인 국가가 되는 순간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2015년 1월 2일 금요일

오스만의 대포 - 불가능한 혁신

  한때 '절대강자'로 군림하다가 끌려 내려온 인간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낡은 것에 집착하다가 시대에 뒤처졌다는 점이다. 펠리페 2세의 스페인이나 IBM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교훈은? "새로운 것에 항상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혁신을 받아들이자"???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열린 마음이나 혁신적 자세라는게 그런 걸 가지고 싶다고해서 그냥 생기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때 힘 좀 쓰던 '강자'들은 버려야할 낡은 유산이라는 것이 자신의 존재가치 그 자체와 연결되거나 최소한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실은 혁신이라는게 거의 불가능한 이유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번째 예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이다. 맘루크라는 단어는 원래 노예를 뜻하는 말이었다. 다만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아니고 군사노예 그러니까 군주에게만 충성하는 노예군단을 뜻한다. 따라서 노예라고는 해도 이들은 엘리트 군인이었다. 특히 기마에 능한 캅차크계통의 투르크인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완전무장하고 전장을 누비는 중장 기병이었다. 전쟁터에서의 모습만 보면 중세 유럽의 기사단과 유사한 느낌일 것이다. 이 노예들-혹은 기병집단이 이집트의 아유브 왕조를 대체하고 직접 권력을 잡은 것이 맘루크왕조다.13세기 중반부터 시작되는 이집트 맘루크왕조의 명성은 1260 아인 잘루트에서 몽골 기마군단을 격파하고 1291 십자군의 마지막 거점인 아크레를 함락했을 절정에 달했다.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의 패권을 쥐고 250년간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그 영광을 뒷받침 한 것이 맘루크 왕조의 중장 기병들이다. 최고의 돌파력을 자랑하며 전장을 누비던 이들에게는 몽골군단도, 티무르 제국도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맘루크 기병. 전형적인 중장기병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1516년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이집트 공략을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오스만, 페르시아와 함께 이슬람 세계를 3분하고 있던 맘루크인 만큼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곧 오스만 군단을 요격하기 위해 맘루크가 자랑하는 기병대가 출격했다. 하지만 이 둘이 맞붙은 마지-다비크 전투는 허망할 정도로 싱겁게 끝났다. 맘루크가 자랑하던 중장기병은 이미 화약시대로 접어든 16세기에 그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군대인가를 드러내며 몰살당했다. 오스만 제국은 일찍부터 유럽인들에게서 화약무기의 사용법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대포와 총 등 화약무기를 성공적으로 실전에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맘루크들은 이미 화약시대로 접어든 16세기 임에도 중세 기사들처럼 활과 창으로 무장한 채 정면돌격만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총과 대포에 정면으로 맞선 맘루크 기병대의 용기는 가상한 것이었지만 용기만으로 화약 무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맘루크들이 실패한 이유도 결국 혁신의 부재였던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 버리면 '역시 혁신이 중요하다'라는 식의 정말 뻔한 교훈으로 끝나고 만다. 문제는 왜 맘루크들은 오스만 군대와 달리 화약무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어리석어서?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라서? 하지만 이런 이유는 사실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맘루크들에게 화약무기 세례를 안긴 오스만 제국도 이집트 맘루크 왕조와 똑같은 투르크계 이슬람교도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맘루크들의 사회적 지위, 그러니까 기득권 자체가 이들이 엘리트 기병이라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집트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엘리트 기병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력에 있었다. 그러니 이걸 포기해버리면 맘루크들은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니다. 만약 이집트 군대에 화약무기를 받아들이고 이들을 주력으로 쓰게 된다면 맘루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맘루크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적군의 화약무기에 쓰러질지언정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이집트 군대에는 결코 화약무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카이사르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보고싶은 현실만을 바라보기 마련인지라 그렇게 해도 당분간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법이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느라 화약무기의 도입을 저지한 댓가는 곧바로 전쟁터에서 치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듬해인 1517년 맘루크 왕조는 멸망한다.
  그럼 화약 무기 도입에 성공한 오스만은 그후에서 승승장구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같은 화약 무기라도 어떤 화약무기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스만과 화약무기 사이의 악연을 살펴보기 위해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으로 가보도록 하자. 


콘스탄티노플 3중성벽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주인이었던 비잔틴 제국은 비록 과거에 비해 형편없이 쇠락하여 콘스탄티노플 부근을 겨우 영유하고 있을 정도로 약화되어 있었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성벽만은 유럽 전체를 통틀어도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로마제국 말기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건설된 이 성벽은 콘스탄티노플 삼중 성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성벽 앞에는 유럽의 어느 성벽보다 깊고 넓은 해자가 있었고 해자 뒤에는 흉벽과 너비가 2m 높이가 5m인 외성벽, 너비 5m 높이 12m인 내성벽 줄줄이 자리잡고 있었다. 흉벽과 외성벽, 내성벽을 포함해서 삼중 성벽이라고 불린다. 더구나 내성벽과 외성벽에는 각각 96개 씩의 망루가 설치되어 있어 적을 감시하고 적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외성벽과 해자는 이제 흔적을 찾기가 거의 어렵지만 폭이 5m나 되는 내성벽은 아직도 세월의 공격을 견뎌내고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 남아있다. 성벽의 위력은 말 그대로 막강해서 제국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 수도 면전까지 영토가 유린되었다 해도 이 성벽을 넘어 수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군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 역시 압도적인 병력으로도 쉽사리 성벽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반대로 해석하면 일단 성벽만 넘어선다면 수적으로도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정예함에서도 당시 유럽에서 상대가 없었던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가 순식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오로지 견고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돌파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셈이었다. 
  이렇게 성벽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오스만 진영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역사는 이 사람의 이름을 우르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헝가리 출신이라고 추정되는 우르반은 원래 비잔틴 황제에게 먼저 달려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포를 만들 수 있으니 이 기술을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잔틴 황제는 왠일인지 그를 물리쳤다. 그러자 이 대포 기술자는 자신의 기술을 사줄 사람을 찾아 오스만 진영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 기록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진위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극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가공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공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비잔틴 황제는 우르반의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비잔틴 입장에서는 이 대포가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15세기까지 대포는 전적으로 성벽을 부수는 데만 사용되었다. 그러니 성벽을 부수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게 목적인 비잔틴 제국의 입장에서 이 대포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비잔틴의 황제가 좀 더 냉혹한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그를 죽여서 기술 자체를 말살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입장이 달랐다. 그가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이 바로 성벽을 부수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메메드는 즉시 우르반에게 요구하는 금액의 2배를 주고 대포를 만들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포는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정식으로는 ‘마호메타’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불 뿜는 도마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이 대포는 포신의 길이만 8.2m, 무게는 19톤이 넘었다. 포탄으로는 돌덩어리를 사용했는데 500㎏ 이상의 돌덩어리를 깎아 만든 포탄을 최소 1.6㎞ 이상 발사했다고 한다. 워낙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기 때문에 대포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사륜마차 30대와 소 60마리 그리고 무려 200명의 병사가 필요했다. 포가 한번 터지면 거대한 굉음 때문에 19km 떨어진 임산부가 유산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메메드 2세는 만족했다. 곧 비슷한 크기의 대포들이 차례로 제작되어 성벽을 파괴하는데 동원되었다. 동원된 대포들은 부분적으로 너무 큰 크기 때문에 몇발 쏘지도 못하고 부서지곤 했지만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성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특히 대포가 발사될 때마다 발생하는 엄청난 폭음은 콘스탄티노플 방위군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결국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버텨내지 못했고 1453년 5월 29일에 함락되었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 전시된 오스만 시대의 대포
  이때부터 오스만 제국은 대포의 크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나톨리아를 비롯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서는 양질의 청동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곧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포들이 앞 다투어 만들어지고 공성전에 사용되었다. 대포들이 너무 커서 전쟁터에 끌고 다니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오스만의 술탄들은 아예 전쟁터에다가 대포 제조공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직접 초대형 대포를 만들곤 했다. 이것도 풍부한 청동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스탄불에 있는 군사박물관에 가보면 정말 거짓말처럼 엄청난 크기의 청동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너무 커서 직접 보면 솔직히 무섭다기 보다는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한 동안은 이 거대한 대포들이 효과를 발휘했고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대포의 발달과 함께 성벽도 변하기 시작했다. 돌이나 벽돌이 아닌 흙이 요새 축성의 주요 재료로 사용되자 성벽을 부수는 대포의 위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야전에서 이렇게 크기만 한 대포는 점점 쓸모가 없어졌다. 시대의 흐름은 오히려 야전에 쉽게 끌고 다닐 수 있는 소규모 야전포가 중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은 대포의 크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 거대한 대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야포의 우위가 명백해진 18세기 말에도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대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 되었던 토트 남작은 “넓은 구경 때문에 겉보기에는 막강해 보이지만 막상 첫발을 발사하면 한참 지나야 작동 시킬 수 밖 에 없어 두려워 할 까닭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대포가 어느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괴물이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조금 길지만 토트 남작의 기록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투르크인들은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성곽위에 500Kg 짜리 돌덩어리를 날려 보낼 수 있는 엄청난 대포를 올려  놓았다. 무라드 치세 당시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대포는 나사못으로 연결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파샤에게 공격 시 한발 이상 발사할 경우 재장전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처음 단 한발 만으로도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므로 한발의 발사만으로도 적 함대를 날려버리는데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험발사를 제안했다. 그러지 내 제안에 주위사람들은 벌벌 떨었고 그 가운데 가장 늙은 사람은 이 대포가 아직까지 발사된 적이 없으나 만약 발사되면 이 성곽과 도시 전체를 뒤덮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 온다고 주장했다.
대포를 장전하기 위해 화약이 자그마치 150Kg이나 소모되었다. 나는 수석 기술자에게 뇌관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내 명령을 듣자 모두들 다가올 위험을 겁내며 자취를 감추었다. 파샤도 꽁무니를 빼려는 참이었지만 나는 성 한 모퉁이 작은 정자에서는 포탄의 효과를 안전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며 간신히 그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파샤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자 이제 남은 일은 기술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 뿐이었다. 그는 도망가지 않고 남은 유일한 기술자였지만 이런저런 불평만을 늘어놓으며 확고한 결의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를 북돋기 보다는 나도 그와 똑같은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그가 군소리를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대포 뒷쪽 보루에 자리 잡았고 땅이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550m 떨어진 거리에서 바윗덩어리가 세 조각으로 쪼개지더니 한 조각이 해협너머에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반대편 산등성이로 도로 튕겨 나오는 것이 보였다.”
  결국 맘루크 기병들을 화약 무기로 끝장냈던 오스만 제국도 콘스탄티노플의 승리에 자만함으로써 시대에 뒤떨어진 대포에 집착하게 되었고 17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인들에게 군사적 우위를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러니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인양 떠들지 말자. 스티브 잡스의 표현처럼 혁신이란 스스로를 잡아먹을(자신의 기득권을 내가 먼저 공격할)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