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1936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글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사IN"에 기고했던 글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니 야권이 지금도 그때 그 상태 그대로라는 사실에 다소 절망적인 느낌이 든다. 

“당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먼저 당선되어야 한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2012년 대선이 시작되면서 몇몇 후보들이 루즈벨트를 롤모델로 제시했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 고삐풀린 독점기업들의 횡포, 공동체정신의 실종 등 1930년대 대공황 때를 연상시키는 현재의 한국상황이 아마도 ‘루즈벨트 같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불러온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의 진행상황을 보면, 후보들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루즈벨트가 했던일에 대해서만 공부를 했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루즈벨트가 했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루즈벨트의 말처럼 선거에서 이기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습니다. 루즈벨트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풍부한 정치가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잡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말 악착같이 싸웠습니다.

  루즈벨트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1936년 대선은 20세기 미국의 운명을 결정한 선거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간략히 살펴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제, 사회보장제도, 농업보조금제등 주요 뉴딜법안은 1935년 연방 대법원에 의해 모두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듀퐁같은 거대 기업은 루즈벨트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냈고, 80% 이상의 언론은 루즈벨트를 적대시 했습니다. 1936년 대선에서 루즈벨트가 패배했다면 뉴딜정책도 끝장이 났을 것입니다. 루즈벨트는 반드시 이겨야만 했습니다. 

 <1935년 사회보장법안에 서명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기기 위해서 루즈벨트가 선택한 방법은 공공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들과 맹렬하게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루즈벨트는 특권적인 독점기업들에 대해 “경제적 왕당파”라고 부르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 “왕당파”라는 호칭은 영국국왕과 싸워서 독립을 쟁취한 미국인들의 당시 정서를 고려할때 한국식으로 바꾸면 “친일파”정도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과연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경제적 특권세력을 “경제적 친일파”정도의 강한 단어로 공격할 수 있을까요? 루즈벨트의 공격을 받은 거대기업들은 당연히 루즈벨트를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사회주의자, 파시스트, 독재자 등등 할수있는 모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오히려 루즈벨트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당선을 도와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공의 ‘적’을 분명히 하는 것은 선거자체뿐 아니라 선거후에도 도움을 줍니다. 논쟁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인들은 투표를 통해 루즈벨트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표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1936년 경제적 특권세력과 공공연한 전쟁을 선포한 루즈벨트가 승리하자 미국에서 뉴딜은 사회적 합의가 되었습니다. 뉴딜에 대한 비난은 사라졌고 1935년에 위헌 판결을 내린 거의 동일한 법안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다시 합헌판결을 내립니다.

  선거는, 특히 대통령 선거는 국가의 진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뉴딜정책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루즈벨트가 1936년에 낙선했다면 뉴딜도 끝났을 것이고 미국은 전혀 다른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우리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자신과 신념을 공유하는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시사IN 2012년 12월 17일 (월) [274호] 

댓글 없음:

댓글 쓰기